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평 윤씨 (문단 편집) === 번성 === 파평 윤씨는 [[조선]]시대 들어와 가문이 크게 번성하면서 명문 세도가의 반열에 올랐다.(이미 [[고려]] 시절부터 문벌 귀족 15가문을 시작으로 권문세족 안에서도 재상지종 9가문의 명문가였다.) 파평 윤씨는 왕비를 두번째로 많이 배출한 성씨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4명[* 조선왕조에서 제일 많은 왕비를 배출한 가문은 6명을 배출한 [[청주 한씨]] 다. 두번째는 [[여흥 민씨]]와 [[파평 윤씨]]. [[폐비 윤씨]]의 경우는 [[종묘]]에 배향되지 못하고 살아생전 폐비되었으므로, 왕비라고 할 수 없다. [[경종(조선)|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를 왕비로 치지않는 것과 동일. ]의 [[왕비]]를 배출했으며, 수많은 과거 급제자와 [[고관대작]]들이 나왔다. 그중 [[중종(조선)|중종]] 대에서는 파평 윤씨에서 2명의 왕비([[장경왕후]]와 [[문정왕후]])가 나와 한 가문에서 [[을사사화|대윤과 소윤]]으로 갈려 싸우는 비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판도공파의 파조는 윤승례인데, 그는 시조 윤신달의 13세손으로 윤척의 아들이다. 윤승례의 아들이 [[세조(조선)|세조]]의 장인인 윤번이고, 윤번의 딸이 [[정희왕후]](세조 비)이다. 판도판서공파는 윤승례의 아들 대에서 제학공파 부윤공파 정정공파로 갈라진다. 그중 정정공파에서 2명의 [[왕비]]가 나와 대윤과 소윤의 싸움이 빚어졌다. 윤승례의 아들 윤번은 [[세조(조선)|세조]]의 장인이고, 윤번의 맏아들인 윤사분은 [[우의정]], 둘째인 윤사윤은 예조판서, 셋째인 윤사흔이 우의정이 되어 형제간에 [[정승]]을 지냈으며 7∼8대에 걸쳐 국구부원군과 공신부원군, 정승, [[판서]]와 당상관들이 배출되어 조선 시대 최고의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윤사윤과 윤사흔 두 집안에서 각각 [[중종(조선)|중종]]의 [[왕비]]([[장경왕후]], [[문정왕후]])가 배출되어 왕실 및 왕위 계승을 놓고, 대윤과 소윤으로 갈라져 싸우는 비극이 일어났다. 윤사윤의 손자인 윤여필의 딸이 [[중종(조선)|중종]]의 제1 계비인 [[장경왕후]]이고, 그녀의 오빠가 [[윤임]]이다. [[장경왕후]]는 세자([[인종(조선)|인종]])를 낳고 곧바로 죽었다. [[장경왕후]]의 뒤를 이어 윤사윤의 동생인 윤사흔의 증손 윤지임의 딸이 제2 계비로 책봉되어 [[문정왕후]]가 되었다. 먼 친척뻘인 고모와 질녀가 같은 왕의 왕비가 된 것이다. [[문정왕후]]는 4명의 [[공주]]를 낳은 끝에 어렵사리 아들 [[명종(조선)|명종]]을 낳았다. 그 뒤로 그녀는 남동생 [[윤원형]]을 끌어들여(소윤)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을 중심으로 한 일파(대윤)와 정치적 암투를 벌였는데 이를 대윤과 소윤의 싸움이라고 한다. 대윤과 소윤의 싸움은 [[명종(조선)|명종]]이 왕위를 계승함으로써 소윤의 승리로 끝났으나, 소윤 역시 [[문정왕후]]가 죽자 몰락하였다. 결국 대윤과 소윤의 싸움은 파평윤씨 판도공파의 몰락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소정공파는 윤승례의 형 윤승순의 아들인 윤곤의 후손이다. 윤승순은 [[공민왕]] 때 요승인 [[신돈]]의 살해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유배되었다가, [[신돈]]이 주살된 후 풀려나 응양군 상호군이 되어 왜국의 침입을 막아냈다. [[창왕]] 때는 [[권근]]과 함께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명나라의 명에 의해 [[공양왕]]을 즉위케하였고, 판개성부사를 지냈다. 윤곤은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 태종)을 도와 좌명공신에 책록되고 이조판서를 지냈다. 그의 손자 윤호는 [[성종(조선)|성종]]의 장인으로서 딸이 성종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이다. 그 후 그는 돈령부영사를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윤곤의 후손 중에는 [[성종(조선)|성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윤필상이 있다. 그는 [[문종(조선)|문종]] 때 추장문과에 급제했다. [[이시애의 난]]에 도승지로 왕명을 신속하게 처리하여 우참찬에 특진하였다. 성종 때 영의정에 오르고 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폐위를 막지 못하였다는 죄로 진도에 유배되고 [[사약]]을 받았다. 그의 증손인 윤현은 [[명종(조선)|명종]] 때 호조판서를 지내고, [[선조(조선)|선조]] 때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돈령부영사에 이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이밖에 소정공파의 윤사로는 [[세종대왕]]의 딸 정현옹주와 결혼하여 [[영천군]]에 봉해지고, 세조 즉위년 좌익공신에 책록되고 좌찬성, 중추부영사에 이르렀다. 파평 윤씨 출신 중 [[일제강점기]]에 작위를 받은 사람은 없다. [[조선귀족]] 명단을 살펴보면 종종 윤씨가 눈에 띄기는 하나 파평인은 아니다. 파평 윤씨가 윤씨 중 제일 인구가 많다보니(전체 윤씨 중 약 75%)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윤씨라면 무조건 파평 윤씨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지만 파평 윤씨가 아니다.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일이기는 하나, 엄밀히 따져보면 조선 초, 중기와 달리 후기에는 가문의 영향력이 떨어졌던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닌가 한다. 아무래도 당시에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나중에 작위를 반납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작위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조선의 초기 전성기를 대놓고 박살낸 [[계유정난]]의 최대 조력자 가문인 것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지라 역사를 어느 정도 배운 대중들에게는 친일파를 제외하고 봐도 인식이 좋기는 어렵다. 실제로 가상 대체 역사 사극이지만 파평 윤씨 가문의 주연을 악역으로 설정한 '대군 사랑을 그리다'에서 되려 파평 윤씨 가문의 배우인 윤시윤이 실제 역사에서 세조 및 정희왕후와 척을 진 안평/금성대군 역을 맡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이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버드 대학교]]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illett Wagner) 교수와 [[전북대학교]] 송준호 명예교수[* 여담이지만 송준호 교수는 생전에 남긴 저서가 겨우 1권뿐이고 그것도 학회에 발표한 논문을 모은 논문집이지만, 한문으로 기록된 [[한국사]], [[중국사]] 원사료 해독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오만하고 콧대 높은 도올 [[김용옥]]조차도 그 능력을 인정하여 감히 송 교수 앞에서는 함부로 아는 척을 할 엄두를 못냈을 정도.]가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들의 출신 배경 및 그 행적과 업적을 종합적으로 추적한 와그너-송 프로젝트에 따르면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들 중 [[전주 이씨]], [[안동 권씨]][* [[안동 권씨]]는 [[경주 김씨]]에서 갈라져 나왔다.] 다음으로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그 뒤로는 [[남양 홍씨]], [[청주 한씨]], [[광산 김씨]], [[밀양 박씨]], [[연안 이씨]], [[여흥 민씨]] 순으로 순위가 이어진다.] 참고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운영하는 [[http://people.aks.ac.kr/index.aks|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전주 이씨 868명, 안동 권씨 366명, 파평 윤씨 346명(함안/남원 윤씨 포함 424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